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연시인데 연애를 할 수 없는 건에 대하여/설정 (문단 편집) ==== [[모스크바 대공국]] ==== ||<-12> '''모스크바 대공국의 국기'''[* 모스크바 대공국과 그 후계국인 루스 차르국이 쌍두독수리 깃발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제국이 멸망하고 20년 정도가 지난 1472년부터였다.] || ||<-12> [[파일:모스크바 대공국 국기.svg|width=25%]] || ||<-2> '''국명(한국어)''' ||<-4> '''모스크바 대공국''' ||<-2> '''건국년도''' ||<-4> '''1283년'''[* 킵차크 칸국의 지배를 몰아낸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1380년.] || ||<-2> '''국명(원어)''' ||<-4> '''Великое Княжество Московское [br] Velikoye knyazhestvo Moskovskoye''' ||<-2> '''수도''' ||<-4> '''모스크바''' || || 정치체제 ||<-3> 전제군주정 || 통치자 ||<-3> 대공 [[바실리 2세 |바실리 2세 류리코비치]] || 종교 ||<-3> 러시아 정교회 || 당대 정교회 국가들의 콩라인. 명군 드미트리 돈스코이 하에서 잠깐이나마 독립을 쟁취하고, 수 년 뒤 [[티무르]]가 군세를 이끌고 [[킵차크 칸국]]을 박살내면서 거의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. 하지만 돈스코이의 아들이자 폴란드-리투아니아와의 동맹을 통해 모스크바의 영토를 몇 배로 늘린 정복군주 바실리 1세가 죽자, 그 아들인 바실리 2세와 동생인 유리가 11년에 걸친 내전인 '''대봉건전쟁'''을 벌이면서 나라가 박살나다시피 한 상황.[* 그 뒤로도 카잔 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며 바실리 2세는 장님이 되는 등 고난이 이어진다. 그것이 끊어진건 이반 3세가 즉위한 뒤의 이야기.] 많은 독자들이 현실에서 모스크바 대공국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콘스탄티노플에 하기아 소피아를 수리하라며 많은 재물을 선물하는[* 근데 정작 이 재물은 대부분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을 비롯한 방어시설을 재건하는 데에 쓰였다.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이를 두고 뭐라 하지 않았는데 하기아 소피아 수리용 재물이라는 말은 일종의 보이기식 명분이고 사실상 동로마에 대한 금전 지원이었기 때문이다.] 등의 태도를 보인 점 때문에 추후 우군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점찍었지만, 작가가 모스크바가 교회통합에 반발해 따로 떨어져나갈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독립교회인 러시아 정교회를 세우고 최악의 경우 제국과 적대할 수도 있다는 것이 암시되었다. 그리고 첫등장에서 이 사실을 규탄하며 러시아 정교회의 독립을 선언했는데 거리가 있는지라 주인공도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고 결정적으로 폴란드와 튜튼 기사단에게 기회가 되리라 언급하며 교회 독립의 결정이 모스크바 공국에 최악의 한 수가 되리라는 암시가 걸린다. 즉, 원역사보다도 더 큰 위기가 찾아올 전망. 이주교 공의회를 받아들인 폴란드와 튜튼 기사단이 이단인 모스크바 공국을 침공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. 이후에는 폴란드와 대립하다 폴란드가 헝가리 계승전쟁으로 약해진 틈을 타 다른 공국들과 느슨한 연맹체를 구성하며 덴마크, 스웨덴과의 북방 연합 왕국 수립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